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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재수 이야기 - 그래 재수를 할 거면 확실히 해라

by 입시프로 2022.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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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쩔 수 없이 재수를 하게 되자 아이도 멘붕이었고 나도 멘붕이었다. 아이는 나름대로 내신 성적이 좋았고 고등학교 3년 내내 원하는 성적을 잘 챙겼기에 수시로 대학을 진학하는데는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6군데 쓴 수시 대학들이 1차 발표가 날 때 마다 아이의 합격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공계 대학 중에 한군데는 학교장 추전으로 원서를 넣었는데 학교장 추천이라는 것이 들을 때는 기분이 좋지만 실제 경쟁률은 엄청나다. 일반으로 지원해서 경쟁하는 것 보다 더 경쟁이 치열함을 떨어지고서야 알았다. 

 

수시에서 다 떨어지고 나니 기운이 하나도 없다. 아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수능 점수를 받아 들고 나니 갈 수 있는 대학은 있는데 가고 싶은 대학은 없다. 고등학교 3년동안 목표하던 대학과는 거리가 심하게 있다. 대충 정시로 3곳을 선택하고 가지고 있던 희망을 내려놓고 긴 한숨을 쉰다. 

 

정시로 대충 선택해서 갈려고 한 것은 아니었기에 정시 합격은 결국 의미없는 짓이 되고 만다. 아이와 재수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서로 마음을 추스린다. 

 

아이는 언제부터 재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지 계획을 잡지 못한다. 대학에 합격한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한다. 지금 당장 다시 책을 잡고 의지를 불태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과 걱정이 앞선다. 아이는 3년동안 쌓인 피곤과 에너지 방전으로 쉬고 싶어 하는데, 수능 시험 끝나자 마자 재수에 돌입해서 서울대 간 쌍둥이 형제 이야기가 생각나서 내 마음은 조금도 편해지지 않는다. 

 

제주도에 다녀온 아이도 별로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재수종합학원을 찾는다. 학원에서는 수능성적표 등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재수 생활이 시작될 때 아이도 엄마도 나도 모두 서툴렀다. 우리 모두는 수시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데에 전혀 문제 없을 것으로 믿고 담임도 그렇게 상담을 해주었으니까.

 

2월에 졸업식.

아이가 재수해야 되는데 졸업식을 가족들이 가서 축하를해주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졸업식에 참석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어쨌든 일생에 한 번 뿐인 아이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한다. 봄에는 벗꽃으로 유명한 교정을 둘러 보며 2월의 찬바람을 맞는다.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합격했어야 했는데, 조금 목표를 낮추어서 수시로 합격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등등.

아이는 국회의원상을 받는다. 그의 반에서 우리 아이를 포함해서 딱 2명이 상을 받는다. 그는 순천향 의대를 가고 우리 아이는 재수 하러 간다. 마음이 아프다. 진짜 아프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나에게는 더 을씨년스러웠다. 

아이는 재수 학원에 가기 위해 집에서 7시 20분에 셔틀을 탄다. 8시까지 들어 가야 한다. 아파트에 중학교때 같은 동창이 같은 학원에 재수하게 되어 매일 아침 그와 함께 같은 셔틀을 탄다. 밤 10시에 학원에서 다시 셔틀을 타고 집에 돌아 오는데 그 친구는 집근처 독서실로 바로 가서 12시까지 공부하고 돌아오고 우리 아이는 바로 집에 온다. 어느날 우리 아이도 독설실에서 12시까지 공부하고 오게 된다. 그 친구는 자기가 원하는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열심이다. 

 

아이의 재수 생활이 본격화 되는 때에 아내가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된다. 집이 텅빈다. 수술을 마치고 돌아 온 아내는 방사능 치료등으로 일반적인 생활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매일 조용히 방에 누워 있든지 앉아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 자신에게도 위기가 닥친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직장으로 몇 십년을 출퇴근해 온 곳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어 온다. 3년 연속 적자가 나는데, top management에서 경영을 잘못하여 경영이 악화된 것이 3년 연속이어지니 회사는 더 이상 참지 못한다. 살벌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나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벼랑 끝에서 결국 회사를 나오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당해 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아이는 수시로 대학 진학을 추진해 왔기 때문에 재수하면서 정시로 대학을 가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학교 다닐 때는 수시로 가면서 수능은 최저 조건만 맞추자는 정도로 해왔기 때문이다.

 

다니는 재수종합학원은 교재비, 식대비, 셔틀비 다 포함해서 월 150만원 정도 들어 갔다. 3월 첫 모의고사를 치고 30% 성적 장학금을 받는다. 4월도 그랬고 5월부터 8월까지는 50%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은 쭉 오른다. 9월부터는 100% 장학금을 받으면서 아이는 나의 학원비 부담을 완전히 들어 주는 저력을 발휘한다. 

 

나는 매주 일요일 점심 때에 아이와 둘이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일요일 오전에 홈플러스에 가서 삼결살600g을 12900원에 사온다. 아이는 일요일만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점심 때 내가 구운 삼겹살을 먹으면서 일주일간 학원이야기 공부이야기 성적이야기를 하곤 했다. 

 

재수하면서 아이는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을 중단한다.

전혀 게임을 하지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는 게임에 꽤 소질이 있는 놈이었다. 대학 다니면서는 친구 게임 실적을 높혀 주어 치킨쿠폰도 선물로 받아와서 가족들한테 치킨파티도 열어 줄 정도였다. 

 

롤 게임이 온라인으로 전세게 4백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아이가 최고 3만명 level까지 진입해보았다고 하고 지난 학기에 다니는 학교에서 팀별 게임 대회에서 아이가 속한 팀이 우승까지 했다고 한다. 

 

어쨌든 게임 메니아인 아이는 재수를 하면서 게임을 확실하게 끊는다. 대학에 합격하고 난 후에 매일 pc방에 가서 새벽 3시 4시까지 친구들과 게임하고 돌아와서 나한테 한소리 듣는다. 하루 종일 게임해도 좋다. 그러나 12시에는 귀가 하라고.

 

이 잔소리를 한 날부터 아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밤 12시에는 집에 들어 온다. 그러고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친구들을 만나서 게임을 한다. 집에서 밤새워 게임에 몰두하는 날도 많다. 이렇게 게임에 미쳐 사는 놈이 재수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게임을 하지 않고 버틴 것에 나는 놀란다. 

 

일요일 빼고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공부에 전념한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다. 그가 고등학생들을 수학과외를 한 적이 있다. 그가 학생들에게 가장 반복적으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공부할려면 제대로 해라! 독하게 해라! 그러면 원하는 대학에 간다. 

 

지금 우리 집에는 나와 아내만 산다. 아내는 건강을 회복하고자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 새로운 직장 생활을 하게 되는 행운을 잡는다. 처음으로 국민연금을 월급에서 내는 그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나도 제 2의 직장에서 아주 일에 미쳐 살고 있다. 새로 배워 가면서 새로운 전문가가 되어 가는 느낌이 너무 소중하게 여겨져 첫 직장 때 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던 길을 뚜벅뚜벅 잘 걸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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